조금 탁하고, 약간은 시큼한데... 왜 자꾸 생각이 날까.
몇 달 전 어느 저녁, 친구와 홍대의 작은 와인바를 찾았다. 간판도 조용하고 조명도 은은해서 '여긴 분위기로 승부 보는 곳인가 보다' 했는데, 메뉴판이 심상치 않았다. "내추럴 와인 전문"이라고 쓰여 있었고, 병 이름은 하나 같이 낯설고, 라벨은 마치 아이가 그린 듯 자유분방했다.
"뭐야 이건?"하고 웃으며 시킨 첫 잔. 입에 넣는 순간 나는 멈칫했다.
톡 쏘는 산미, 쌀짝 묵직한 효모 냄새, 그리고 이상하게 익숙한 포도 껍질 맛. 머릿속은 복잡했지만, 입 안은 계속 다음 한 모금을 원하고 있었다.
"이게... 맛있다고 해야 하나?"
그날 이후 내추럴 와인이라는 세계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내추럴 와인이란 무엇인가?
'내추럴 와인'은 말 그대로 자연 그대로 만든 와인이다. 정확히는 포도 자체의 힘과 자연 발효만으로 만든 와인을 의미하는데, 어떤 사람은 이를 "와인의 원시 상태"라고도 표현한다.
그렇다면 기존 와인과 뭐가 다를까?
1. 포도 재배에서부터 다르다.
- 대부분의 내추럴 와인은 유기농 또는 바이오다이내믹(생명역학) 농법으로 재배한 포도를 사용한다. 화학 비료나 제초제는 거의 쓰지 않는다.
2. 첨가물 없이 양조된다.
- 일반 와인에는 맛과 향, 색을 안정시키기 위해 인산화황(SO2), 효모, 산도 조절제 등 다양한 첨가물이 들어간다. 반면 내추럴 와인은 가능하면 첨가물을 넣지 않고, 인공 효모도 쓰지 않는다. 발효는 오직 포도 껍질에 자연스럽게 부어 있는 효모로 진행된다.
3. 여과와 정제를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 그래서 내추럴 와인은 때때로 탁하고, 침전물이 보이기도 한다. 우리가 익숙한 '맑고 반짝이는 와인'과는 거리가 있다.
자연주의 와인의 철학: 통제보다 신뢰
내추럴 와인은 단순한 스타일이 아니라 철학이다. 이는 "자연을 통제하는 대신, 믿고 따라간다"는 생산자의 태도에서 비롯된다.
포도가 자라는 환경, 햇빛, 토양, 바람, 그리고 해마다 바뀌는 날씨까지... 이 모든 요소는 와인의 개성과 직접 연결된다. 일반적인 와인 생산자는 이를 표준화하려 하지만, 내추럴 와인 생산자는 있는 그대로 표현하려 한다.
이건 마치 아이의 그림을 꾸미지 않고 그대로 액자에 넣는 것과 같다. 덜 다듬어졌지만, 그 안에 살아 있는 이야기와 에너지가 있다.
왜 자꾸 찾게 될까? - 내추럴 와인의 매력
내추럴 와인을 좋아하게 된 후, 나는 점점 '완벽하지 않은 것'에 매력을 느끼게 됐다. 어떤 병은 너무 산미가 강해 처음엔 인상을 찌푸리지만, 다음 날 생각난다. 어떤 와인은 열자마자 쉰 듯한 향이 올라오지만, 시간이 지나면 감동적인 맛으로 바뀐다.
이건 단순한 음료가 아니라, 살아 있는 존재를 대하는 느낌이다. 병 속에 남은 효모는 숨을 쉬듯 발효를 계속하고, 온도와 시간에 따라 매 순간 다른 얼굴을 보여준다.
사실, 모든 병이 성공작은 아니다. 어떤 건 '아차 싶다' 싶은 것도 있다. 그런데 그조차도 기억에 남는다. 예측할 수 없는 와인, 그게 내추럴 와인의 매력이다.
세계가 주목하는 내추럴 와인
한때 "이상한 힙스터 와인"쯤으로 여겨졌던 내추럴 와인은, 이제 글로벌 와인 시장의 중요한 트렌드가 되었다. 프랑스 루아르, 이탈리아 시칠리아, 오스트리아, 슬로베니아는 물론, 한국에서도 내추럴 와인만 파는 바와 숍이 쁘르게 늘고 있다.
이런 변화의 중심에는 지속 가능성, 건강한 소비, 그리고 다양성의 존중이라는 현대적 가치가 있다. MZ세대는 더 이상 정답만을 원하지 않는다. 대신 자신의 경험과 감각으로 새로운 것을 즐기려 한다. 그런 의미에서 내추럴 와인은 지금 시대의 감성에 딱 들어맞는 와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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